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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문무왕 용이되어 나타나다?!(feat, 만파식적)

vuta 발행일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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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94매주기 역사시간입니다.
오늘은 문무왕의 유언과 그에 얽힌 설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해요.

한반도에 잔존해있던 당나라까지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한 가지 걱정이 있었어요. 삼국을 통일하여 걱정이 없을 것 같았지만 시도때도없이 쳐들어와 백성들의 식량을 약탈하는 왜구때문에 골머리를 썩었지요.

죽어서도 신라걱정

자나깨나 신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문무왕은 죽어서까지 신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열흘 후 화장을 하고 예는 지키되 검소하게 하라. 나는 죽어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킬 것 이니라' 라고 말이지요.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용이되어 신라를 지키고 왜구를 소탕할 것이라고 했고, 아들 신문왕은 유지를 받들어 동해 대왕암에 문무왕을 묻게 됩니다.

여기서 학자들의 의견이 나뉘는데 대왕암은 동서남북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이 대왕암 가운데에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돌이 있는데 여기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다는 의견이 있고 화장을 한 뼛가루를 대왕암에 뿌린것이다 라는 의견이있습니다.

아무래도 뭍에도 있어야겠어

감은사지와 3층석탑감은사지와 3층석탑

효심이 지극한 신문왕은 아버지의 산소가 바다에만 있는것이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대왕암이 있는곳에서 멀지 않은곳에 '감은사'를 짓게 됩니다. 감은사의 뜻은 죽어서까지 신라를 지키시는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요

아버지가 용이 됐을 것 이라고 믿은 신문왕은 용이된 아버지가 바닷물을 타고 감은사로 들어오실 수 있도록 '용혈' 이라는 구멍을 만들어 바닷물이 들락날락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아들이 잘 하겠지만 그래도 걱정되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은사를 지은 이듬해 5월 동해에서 작은 산(山)이 나타나 감은사를 향하여 왔다갔다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신문왕인 이를 이상하게 여겨 점을 치게했는데 점쟁이가 말하기를 '문무왕께서 바다의 용이되어 삼한을 지키고있으며 김유신공 또한 하늘의 신이되셨습니다. 이 두 분이 힘을 합쳐 성을 지킬 보물을 주려고 하시니 폐하께서 바다로 가시면 반드시 값비싼 보물을 얻을 것 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를 들을 선문왕이 기뻐하며 해변으로 나가자 산이 있었고, 산위에는 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기이한 대나무였습니다. 그 때 선문왕은 감은사에 머물렀는데 다음날 5월 8일에 대나무가 하나가되더니 천지가 혼란하고 비바람이 심해져 8일동안 다가가지 못했어요. 16일이 되는 날 선문왕이 산으로 가자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바쳤고 그 것으로 만든 것이 만파식적입니다.

만파식적을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가뭄엔 비가오며, 병자는 치유되고 거센 물결은 잠잠해졌어요. 이는 문무왕과 김유신이 신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신문왕에게 준 선물인거죠.
이후 효종 때 만파식적을 사용했더니 또 기적이 일어나 만만파파식적이라고 불리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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